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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박삼헌교수와 떠나는 세계사 여행, 인도 커리는 어떻게 일본 카레가 되었나?!

by 속좁은펭귄 2024.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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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3대 양식으로 손꼽히는 마지막음식은?

 

 

1920년대에 보급돼 1930년대에 절정의 인기를 누린 카레, 1936년 한큐 백화점 하루 카레 판매량이 13000그릇이었다고 합니다. 

 

인도의 커리는 어떻게 일본의 카레가 되었나?

그 계기는 바로 군대입니다. 

1870년대 일본 군대에 퍼진 원인불명의 병이 생깁니다. 

Q 당시 일본군 내에선 극심한 근육 소모로 제대로 걸을 수 없게 되는 병이 유행하는데요. 어떤 병일까요?

바로 각기병이죠. 각기병은 팔다리의 근육 약화와 부종 및 통증을 초래하는 신경학적 질환입니다. 말초신경 장애까지 일으키던 각기병은 서양인들에게는 흔치 않은 반면 일본인들에게만 자주 발생한 각기병.

 

병사들을 괴롭히는 심각한 군 문제로 떠오른 각기병, 당시 적당한 치료법이 없어 사망자가 늘어가던 상황입니다. 육군보다 각기병 환자가 다수 발생했던 해군.

 

 

이 중 32명은 각기병으로 사망, 손 놓고 볼 수만은 없었던 병력 손실. 본격적으로 각기병 원인을 찾아나선 일본군 당국. 

타카키 카네히로(1849~1920) 메이지 시대 일본 해군 군의관은 각기병의 원인으로 백미를 지목합니다. 이유는 백미를 많이 먹어서!!

실제로 당시 병사들에게는 매일 960g의 쌀을 제공받던 병사들, 당시 일반인들의 하루 쌀소비량은 640g인데, 일반인 기준 백미를 과잉 섭취 중이던 병사들, 백미를 먹으면 왜 각기병이 생기는 걸까?

 

 

훗날 밝혀진 각기병의 원인은 비타민B1이죠. 도정된 쌀밥만 먹게 되면 비타민B1의 결핍이 생겨나게 됩니다. 비타민b1을 포함한 대부분의 영양소를 가진 쌀겨 부분이 도정으로 소실되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군대에서 반찬은 주지 않았던 것일까요?

 

당시 병사들에게 현금을 지급한 일본 군대, 밥만 제공받고 반찬값은 돈으로 받던 병사들은 돈을 아끼려고 반찬을 안 사 먹은 것. 돈을 아끼려고 부실한 반찬으로 식사를 한 병사들.

영국 해군의 식단에 주목한 타카키 카네히로는 유학시절 보았던 식단을 참고해 그들처럼 먹으면 각기병이 해결되리라 추측했지만 추측일뿐 확실하다 할 수 없었던 가설이었죠.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병식 실험을 실시합니다. 

 

1882년 12월부터 1883년 9월까지 9개월간 항해를 떠났던 류조호와 1884년 2월부터 11월까지 9개월간 항해를 떠나는 츠쿠바호를 비교 분석했던 병식 실험. 류조호는 기존의 흰쌀밥 식단을 유지했고, 반면 영국 해군식 양식을 도입한 츠쿠바호.

밥 대신 빵과 건빵으로 식단을 짠 츠쿠바호, 육류, 어류, 콩류를 반찬으로 제공한 실험의 결과는?

 

 

 

식단에 따라 확실한 차이를 보인 실험 결과네요. 비타민B1이 풍부한 빵 덕분에 각기병이 덜 발생한 츠쿠바호.

양식을 채택한 배에서 각기병 발생률을 낮춤으로써, 각기병의 원인이 백미임을 증명한 타카키. 

그렇다면 일본 해군들은 모두 양식을 먹기 시작했을까요?

 

양식 도입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영국 해군이 먹는 빵과 수프 식단을 제시했는데 빵은 주식이 아니라 간식이라 생각했던 병사들, 진퇴양난에 빠진 상황에서 타카키가 제안한 영국 해군의 또 다른 메뉴가 있었습니다. 바로 커리였던 거죠. 

인도의 배합 향신료 중 하나인 커리는 우리에게는 여러 향신료를 조합해 만든 음식 이름으로 친숙하죠. 인도 커리의 맛에 매료된 영국은 18세기 인도를 식민지로 지배하면서 인도의 커리를 자국으로 가져옵니다. 자국민의 입맛에 맞춰 커리 가루를 대량 생산한 영국.

 

 

커리 가루의 보급과 함께 영국에서 대중화된 커리. 영국 해군의 식단으로 채택되기까지 커리 가루를 소고기 수프에 넣어 먹었다고 합니다. 강한 자극성으로 음식의 보존성을 높여준 커리.

커리에 들어간 비타민B1이 풍부한 루로 각기병으로부터 영국 해군들은 튼튼했던 거죠. 영국 해군의 커리를 도입하기로 한 타카키. 영국의 커리 가루를 일본으로 수입을 했고, 

 

 

지금과는 많이 달랐던 모습이죠.

 

Q. 일본 최초의 카레에 고기 대신 들어간 이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개구리 카레, 모양이라도 티안나게 좀 잘게 썰어주지, 무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카레 요리법이라고 해요. 인도와 영국 요리법에는 전혀 없는 개구리 카레. 대체 일본의 카레에 개구리가 들어간 이유는?

 

유력한 가설은 영국인이 일본에 데려온 요리사가 중국인이었다는 설이 있고, 카레를 중국식으로 변형하며 개구리를 넣었따는 추측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설마 개구리 카레가 일본 해군에 보급된 걸까요?

점차 개구리에서 소고기로 재료가 변화한 일본식 카레, 일본 해군에 보급된 것은 소고기 카레입니다. 

 

당시 쌀밥, 현미밥 등에 카레를 얹어 먹는 방식으로 도입되었고, 카레의 향도 덜어지고 밥도 많이 먹을 수 있었던 방법입니다. 비타민b1이 풍부한 밀가루를 넣어 각기병을 예방한 일본식 카레. 

카레를 도입한 해군의 각기병 사망자는 3며에 불과, 이렇게 일본 해군을 통해 탄생한 것이 카레라이스입니다. 당시 일본 해군이 먹었던 카레라이스는 일본의 항구도시 요코스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일본 해군의 4대 항구도시인 요코스카, 카레가게들이 많이 있어요.

 

 

먹음직스러운 색깔의 카레 스튜 속에는 육식 거부감 감소할 수 있게 잘게 썰어 넣은 고기와 각종 채소가 한가득, 밥 위에 듬뿍 올려 먹으면 맛도 영양도 일품인 일본식 해군 카레.

 

이후 일본 해군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된 카레라이스. 오늘날에도 매주 금요일에는 카레라이스를 먹는 해상자위대.

 

초창기 국가 주도로 보급되었던 카레는 일본인의 국민음식으로 자리 잡은 카레라이스, 세계 카레 가루 소비 순위는 1위 인도, 2위 일본입니다. 

 

일본 군대로 인해 탄생한 또 다른 음식은?

바로 양고기 요리  징키스칸입니다. 

 

 

징기스칸의 조리법은?!

가운데가 솟아오른 전용 냄비에 냄비 주위에 채소들을 늘어놓고 음식의 하이라이트 양고기 등장!!

특제 소스를 두른 후 중앙에 양고기를 구워낸다. 육즙이 스며든 채소와 잘 구워진 양고기의 완벽 조화. 훗카이도의 대표 향토 요리인 양고기 요리 징기스칸. 

 

징기스칸은 훗카이도의 대표 향토 요리 중 하나인데, 원래는 냄새 때문에 양고기를 먹지 않았던 일본인들, 냄새가 심한 양고기를 일본인들이 먹게 된 이유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시작된 아시아 태평양 전쟁, 아시아 태평양 전쟁 당시 군복에 쓸 양모 생산을 위해 훗카이도 지역에 활성화된 대규모 양 사육 농장, 이때 생산한 양모로 일본군의 방한복들을 제작합니다. 

하지만 종전 이후 중단된 양모 군복을 생산, 이때 남은양들의 처리를 위해 개발된 양고기 요리 징기스칸. 이후 양고기가 별미가 된 훗카이도. 

 

 

 

 

1868년 일본을 근대화시킨 정치적 혁명인 메이지 유신, 동시에 1200년의 육식 금기를 깨트리는 음식 혁명이기도 하죠.

메이지 유신의 또 다른 이름인 요리 유신.

육식을 하지 않아 열등하다는 서양의 편견을 내면화한 일본, 서양을 따라잡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목표 아래, 탄생한 다양한 일양절충 음식들, 맛있게 먹던 음식들 속에도 숨어 있던 역사 이야기들.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이 된다 - 히포크라테스

 

출처: 벌거벗은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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