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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는 클라스, 하상응교수의 미국 정치사를 통해 흑백 문제를 바라보다.

by 속좁은펭귄 2020.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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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사를 통해 흑백 문제를 바라보다.



1950년대 20세기 중반부터 지금까지 미국 흑인을 향한 제도적 차별 과연 얼마나 달라졌을까?


1954년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판결.





동일한 서비스가 제공되면 차별이라 볼수 없다는 판결.


브라운 대 교욱위원회

1896년 분리 평등원칙, 



딸이 다니는곳은 집에서 1.6km나 되는 너무 멀었던 흑인 전용 학교.


이건 불합리하다면서 전학 신청을 거절당하자 교육위원회에 소송을 제기한 브라운.


3년소요 끝에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간 소송. 대법관 9명의 만장 일치로 흑인 가정이 이김.


" 아동의 흑백 분리 교육은 위헌이다"


" 공공 교육기관에서 흑백 분리는 위헌이다."


분리 평등원칙에 맞선 흑인 아버지의 용기.


인종의 벽을 허무는 흑인 민권운동의 도화선이 됨.


브라운 판결은 미국 사회를 놀라게 한 역사적인 사건이에요.



브라운 판결 이후로 나온 사건들


1957년 아칸소주 리틀록 9인 사건.

리틀록 센트럴 고등학교 백인이 다니던 학교에 흑인 학생들이 등교하려 하자 주 방위군과 경찰이 등교를 저지.





연방군을 동원해 흑인 학생들의 등하교를 보호함.


브라운 판결 나고 3년뒤니깐 여기까진 인정.


앨라배마 대학교 흑인 등록 거부 사건 1963



방위군을 대동해 흑인의 입학 등록을 막아섬.


브라운 판결이 9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함.



존 F 케네디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은 법무차관+ 연반군을 학교로 보내게 됨




케네디가 둔 한수가


" 앨라배마주 방위군을 연방군에 편입시킬 것."


결국 입학을 허용한 조지 윌리스.







흑인 거부한 비슷한 일들이 종종 일어나는데 그게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 저 장면이 나와요.


두 흑인의 입학이 가능했지만 주지사가 출입구를 막아 저지됐습니다.


오늘에야 우리가 우려했던 군사 독재적 성향이 



인종차별 정책이 폐지되어 두 흑인 학생은...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 나와요.


1954년 브라운 판결을 시작으로 흑인들의 편을 들어주었던 연방정부.


오랫동안 억압되어 있던 흑인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함.


또 다른 역사적인 사건은 




1955년 12월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에게 있었던 일로


당시 버스 앞쪽은 백인좌석, 뒤쪽은 유색인 좌석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마저도 백인이 요구하면 자리를 양보해야 했음.


마침 그날 버스에 많은 백인이 올랐고 흑인들에게 자리 양보를 요구한 버스 기사.


그러자 로자 파크스는 이를 거부했고 결국 현장에서 체포되고 만다.


흑백 분리법 위반으로 벌금 10달러 유죄를 선고 받음.





로자가 체포되자 거리로 쏟아져 나온 흑인들.


흑인 민권운도으이 방아쇠를 당긴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흑인의 권리를 위한 정치적 의식을 갖고 했던 행동이었을까요?


그런 생각이 있었다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죠.



2012년 오바마 대통령 재임 당시.



이 사건을 계기로 불합리에 맞서는 흑인들의 목소리가 늘어났는지?


1960년대 본격적으로 흑인 민권운동의 시대가 도래.


흑인 민권운동을 이끈 두 지도자.


흑인 민권운동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핵심적인 두 인물은 민권운동가이자 목사였던 마틴 루터 킹. 기억을 해둬야 하는 것이

마틴 루터킹이 흑인 민권운동을 이끌면서 강조했던 철학.


흑인을 동화시켜 달라.


수정헌법 14조를 통해 얻은 평등한 대우. 그 약속을 지켜 흑인을 온전한 국민으로 받아들인다면

흑인은 미국 사회에 동화되어 통합의 미국을 만드는 데 기여할수 있다고 주장한 마틴 루터킹.


간디의 영향으로 비폭력 원칙을 강조.




흑인 민권운동의 아버지로 손꼽히는 이유가  물론 백인 우월주의자들 눈에는 거슬리겠죠.


1968년 4월 결국 배인 우월주의자에게 암살당한 마틴 루터 킹.



미국 전역에 분노의 물결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것이 되리.


언젠가 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그날. 우리는 이루어내리. 영광이여.


1963년 8월 28일 마틴 루터 킹의 연설.





언젠가 이 나라가 떨쳐 일어나 진정한 의미의 국가 이념을 실천하리라는 꿈.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진리를 모두가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꿈.


바라는 것은 하나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것.


인간다운 삶을 위한 끝없는 행진. 그들의 꿈은 언제쯤 이루어질수 있을까.


실질적으로 투표권이 제한되는 경우도 많았고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평화 시위를 한 흑인들.



셀마행진 1965년

흑인의 참정권 확대를 위해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 약 86km를 행진한 평화 시위임.


1965년 마틴 루터 킹이 이끌었던 셀마 행진.


2015년에 50주년이었거든요.


셀마행진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던 오바마 대통령.





50년 전 핍박의 현장을 흑인 대통령의 손을 잡고 걷게된 역사적 순간.





성향이 전혀 다른 두 지도자.


마틴 루터 킹의 입장은 흑인과 백인이 동등하게 인종 간 화합을 지향.


백인이 흑인을 동등하게 대해줄 리가 없다며 맬컴엑스의 입장은 흑인과 백인은 따로 살아야 한다는 인종 분리를 지향.



흑인 분리주의를 주장하는 흑인 민족주의자들은 아이디어 1. 아프리카로 떠나자.

2. 미국 땅에 흑인만의 공동체를 만들자.


마틴 루터 킹과 마찬가지로 암살로 생을 마감한 맬컴 엑스.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에게 암살을 당한..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 유행했던 사회주의를 받아들인 맬컴 엑스.


흑인 민족주의자들에게 변절자로 내몰리게 됨. 흑인 분리주의를 잘 보여주는 예에요.


흑인 민족주의 지도자들의 주장은 



기독교를 버리는 거죠. 흑인 민족주의자는 대부분 이슬람교로 개종함.


이름도 이슬람식으로.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의 본명은 캐시어스 클레이임.





마틴 루터킹에 비해 어려웠던 유년 시절.

KKK단의 위협을 받기도하고 KKK단의 협박으로 불안한 삶을 살아야 했던 어린시절.


그런 환경에서도 우수한 성적으로 변호사의 꿈을 꾸었던 맬컴 엑스.


그의 꿈을 들은 백인 교사가 건넨 말.




결국 학교를 자퇴하고 흑인 빈민가를 전전하던 그는 절도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게 된다.



자라온 환경의 영향으로 흑인 문제를 다르게 봤다는 해석도.


두사람이 만난적은 딱 한번 있었음.


1964년 3월 26일 민권법 청문회에서 만난 두 사람.


일반 흑인 입장에서도 혼란스러웠을 거에요.


" 어떤 길이 나와 자손들을 위한 길일까."

하나의 목표를 향한 두 갈래의 길. 미국 흑인 민권사의 변화를 가져오다.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으로 인한 변화. 연방정부 차원에서 달라짐.


1964년 민권법 제정.

1965년 투표권법 제정.


그치만 내용에 어이가 없는게



민권법 제대로 알려주마.




그렇다면 투표권법은?? 남북전쟁 이후에 등장한 투표를 방해하는 주법들.

1. 투표세, 2. 투표시험, 3. 할아버지 투표 증명.


1965년의 투표권법은?


투표를 방해하는 쓸데없는 조항들을 전부 불법으로 취급. 그리고 흑인을 차별하는 주법들이 있었던 지역에는


향후 선거법 수정 시에 연방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함.


이후에 어떤 인식이 생겼느냐 하면 연방정부 권한을 강화하기위해 흑인 권익이 높아짐.


주정부의 상황은 반대.!


주정부 권한 강화는 흑인 권익은 줄어들게함.




주정부가 마음대로 하려고 하면 소수자들은  연방정부의 힘이 강화되면 백인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지위가 침해당할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민권법 투표권 64년 65년 법의 내용으로 상당히 많은 부분이 해소됐다고 볼수 있는데



35대 존F 케네디, 36대 린든 B 존슨.


민주당 소속 대통령들이 흑인의 편을 들어준 이유는?




링컨 때만 해도 노예해박은 공화당이 주장했는데..

민주당의 입장은 왜바뀌었나?



당시 민주당은 남부 백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남부지역의 일당 돚개체제를 유지.



지금은 아님.


민주당의 입장이 바뀐 결정적 계기는 미국에서 4선에 성공한 대통령은 누구?



루스벨트의 소속정당은?


민주당 소속임. 물론 민주당이니까 남부의 지지를 받았죠.


많은 노동자가 필요했던 북부.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늘어나게 됨.




북부의 이민자들을 포섭한 루스벨트.


그 배경에는 대공황이 있었죠. 1929년 미국 뉴욕 주식시장의 주가 대폭락을 계기로 시작된 경제 불황.


물가폭락, 기업도산, 실업자 증가.  전 세계를 혼란에 빠트린 대공황.


이러한 상황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 루스벨트.


가장 시급했던 것은  대공황에 빠진 미국을 건져내는 일.


뉴딜정책으로 정부의 신용으로 화폐를 발행하고 농산물의 생산을 제한하는 등 자유 시장 경제 체제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개입한 정책임. 미국을 대공황으로부터 구해내는데 인종차별주의를 적용하기에 한계가 있었던 뉴딜정책.


흑인이 많이 일하는 업종은 제외하고 준다든지 그랬는데 모두에게 적용된 뉴딜정책으로 흑인들도 수혜를 입게 됨.


4선의 원동력이 된 뉴딜정책.




32대 루스벨트, 35대 케네디, 36대 존슨 흑백 차별 완화정책을 시행함.


남부 백인들의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함. 공화당의 생각은 지금이 기회다!!



닉슨.


미국 최대 정치 스캔들인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직에서 내려오게 된 37대 대통령인 닉슨.


당시 상황을 잘 봐야함.





1968년 선거에서 민주당 지지 세력은  제3정당 또는 공화당으로.


1972년 다음 선거는?




재선 2년만에 사임함.


12년에 걸쳐 완전히 뒤바뀐 남부 유권자들의 민심.


남부 지역을 점령한 1972년 공화당.


흑인들은 공화당에서 민주당 지지로! 



법과 질서의 대통령.



법과 질서라는 말이 나온 배경은  마틴 루터 킹을 비롯한 많은 흑인 지도자들의 주장은


비폭력 평화시위.


때로는 지나친 억압에 강한 저항으로 맞설 수밖에 없는 순간들.


시위하는 사람들을 폭도로 규정함. 방화와 약탈을 부각. 더 노골적인 흑백 차별로 남부 백인들의 민심을 사로잡은


1960년대 당시 미국의 또 다른 사회 문제. 반전 운동.



의도는 평화적이었지만 충돌이 생기죠.

그리고 젊은 층에서 퍼져나간 히피문화. 마약을 즐기기도하고 


법과 질서를 파괴하는 사람들로 규정.



그런 닉슨에 동화된 남부 백인들.



여기서 반전.

미국 정치에서 쓰는 표현 중에  개 호루라기 정치가 있어요.





정치에서 쓰이는 의미는 어떤 정치인이 이야기를 하면 특정 유권자들은 이야기 이면에 있는 다른 뜻으로 이해한다는 것.





일부 백인들은 백인을 위한 사람이구나.


특정 유권자의 해석을 정치인도 역이용함.


2001년 9.11 테러 이후에는?



보호해야죠. 맞는 얘기잖아요.


일부 유권자들의 해석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속에 담겨 있는 차별적 발언.


심증으로 끝나면 다행인데 물증이 있음.





존 얼리크만의 증언에 따르면 하지만 히피들은 대마초와 연관시키고 흑인들을 헤로인과 엮어 불법 집단으로 만들었다고.


그리고 두 집단을 모두 불법화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우리는 그들의 커뮤니티를 붕괴시킬수 있었고

그들의 리더를 체포시키고 그들의 집을 불시에 단속하고 모임을 해산시키고


매일밤 뉴스에서 그들을 악당으로 만들었다고.




개 호루라기 분거 인정.


범죄자 프레임으로 악용한 셈. 개 호루라기 정치로 닉슨의 선거운동은 성공하게 되죠.




개 호루라기로 남부 전략에 성공한 닉슨.



닉슨의 전략을 이용하게된 공화당 후보들.


대표적인 케이스는 

 



미국 역사상 훌륭한 대통령 중 한명으로 미국 흑인 유권자에게 대통령 레이건은?

아닐수 있음.


1980년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당선될때 선거운동을 하는 와중에 지탄을 받게됨.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 시절



대통령 선거 유세중 미시시피주를 간 레이건.


내가 대통령이 되면 주의 권한을 강화하겠다고함. 개 호루라기가 또 등장하게됨.


아는 사람은 아는 거죠.





남부 백인들의 호응을 유도할수 있는 시그널이죠.

흑인을 범죄자 프레임으로 씌워 간접적으로 공격했던 닉슨 정부.


레이건 때도 비슷한 케이스가 존재해요. 로널드 레이건 마약남용 금지법.



파우더 코카인은 순도가 높아 비싼 반면 크랙 코카인은 순다가 낮아 저렴함.


흑인들은 크렉 코카인을 더 많이 소비함. 마약남용금지법의 핵심은 파우더 코카인의 형량과 크랙코카인의 형량이

100배 차이남.


마약남용금지법의 논리에 따르면 파우더 코카인은 비싸기 때문에 유통이 활발하지 않다.


크랙 코카인은 싸기 때문에 빠르게 유통, 규제해야 한다.


나름의 이유를 둔 형량 차이. 상대적으로 흑인들에게 큰 피해가 갈수 있는 제도임.


2010년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절 1:100 이었던 형량 비율을 1; 18 로 낮춤.




특정 마약을 특정 인종이 소비한다는 것을 염두했을때 인종 차별주의적일 수 있다는 해석이 당시에도 존재함.



역시 흑인에게 불리하게 작동함.



20세기 후반 미국에서 흑인 남성이 감옥에 갈 확률은?



지금은 저때보다 조금 나아지긴 했다고.


가장 드라마틱한 차이를 보여주는 케이스.



미국 인구에서 흑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백인에 비해 훨씬 적은 흑인의 수.


실질적인 위험과 공포에서 자유로울수 없는 현실.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평생 지고 가야 하는 차별의 무게.


1933년 민주당 소속 빌 클린턴의 등장.


범죄와 마약에 강경한 입장임.

클린턴 때 통과된 삼진아웃제.



2015년에 빌 클린턴이



소수자, 흑인 공동체에 불리하게 적용되었음을 시인.


범죄의 유혹에도 쉽게 노출될수 있는 가능성. 불안정한 가정,  경제적인 어려움등으로

악순환의 고리를 쉽게 끊어낼수 없는 환경임.


엄마가 가르쳐준 젊은 흑인 청년으로서 지켜야 할 것들.



지인들과 연락하고 지내 아주 가까이 살더라도.


주머니에 손넣지마. 티셔츠 안입은채 나가지마, 너무 늦게 돌아다니지마.

살게 아니면 만지지도 마. 껌 하나를 사도 꼭 영수증을 챙기거나 봉투 안에 넣어.


음악을 너무 크게 틀고 운전하지마. 백인 여자를 쳐다보지마.



그냥 협조해.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


더이상 인종차별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기대. 재임 8년동안 아쉽게도 그렇게 되지는 않았음.


자기가 할수 있는 영역에서는 최대한 노력을 했는데 2009년 오바마 1기 내각 구성 당시



트럼프 정부는?



오바마 재임 시절 연방대법원의 판사 자리가 두번 공석이 되었는데


신임 대법관 두명을 여성으로 지명한 오바마. 소수인종 한 사람은 히스패닉계 여성임.


트럼프 때도 있었던 두번의 공석. 놀랍지 않게 두명다 백인 남성.


흑인 유권자들이 오바마에 대해 아쉽게 생각하는 건 기대 이상으로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



흑인의 권익을 노골적으로 옹호하면 반발이 일어날수 있는 가능성도.


대통령 취임 이후 상당히 인종 문제에 신중했던 오바마.



오바마는 실질적인 진전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그전까지는 억누르고 있었던 불만들이 오바마 대통령때 터져요.


2012년 트레이본 마틴 사망 사건.


귀가하던 마틴을 경찰이 범죄자로 의심해 총으로 살해함.



2014년 경찰이 흑인 용의자를 체포하던 도중

목을 졸라 질식사시킨 사건.



조지 플로이드 이전에도 외쳤던 숨을 쉴수 없다.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예전에는 억누르고 있었던 울분을 터뜨리기 시작함.


변하지 않는 현실에 거리로 쏟아진 분노.


기대가 있었기에 더욱 크게 느껴지는 실망. 피해자의 편에서 이야기를 하면 반발이 생기기 때문에



흑인과 유색인종을 억압하는 나라에 자부신을 표현할수 없다.


이에 입장을 드러냈던 오바마.






보수 언론에서 쏟아진 맹비난.


흑인만 위하는 대통령, 분열을 조장하는 대통령.


반발이 모이고 모여서 미국 45대 대통령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


취임이후 법과 질서 카드를 꺼내든 트럼프.


여기저기서 시위나고





닉슨 데자뷔.


대통령 후보 시절 법과 질서를 강조했던 트럼프.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에도 등장한 법과 질서.




미국 경찰 노조는 트럼프 지지를 선언.


KKK단도 트럼프 지지.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의 인종 문제를 오래 연구한 선생님의 입장에서 보면

트럼프의 정책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오바마 케어도 유명무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오바마 지우기.


2015년에 체결한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 선언.



이란 핵 협정 탈퇴 선언. 2016년 체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탈퇴 선언.


세계보건기구 최근에는 WHO 탈퇴선언까지.


이렇게 설명하면 안되는게 정치지만 오바마를 지우는 것이 트럼프의 정책이다 라는게 가장 효과적으로 트럼프의 입장을 설명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함.





2013년 연방대법원에서 1965년 투표권법을 무효화함.


투표권법 전체가 위헌이라는게 아니라




다른 법조문을 만들어서 보완화면  보완하지 않아서 현재 법조문 자체가 무효인 상태.

2013년 연방대법원 판결 이후로  주정부는 다시 마음대로 선거법을 바꿀수 있게 됨.


흑인 유권자에게 실질적으로 적용된 차별.


1. 유권자 신분증법.

2. 중범죄자 투표권 박탈.

3. 선거인 명부 삭제.


유권자 신분증법은 일부주에 해당하는데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이 아니면.

선거 부정을 막기 위해서  못하게함.


가난한 흑인들에겐 다 어렵겠죠. 미국 대학 진학률이 반도 안되는데

법 자체만으로 봣을때 차별인가?


과거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차별의 소지로 느낄수 있는 것.



일부 주에서는 중범죄로 1년이상 감옥을 다녀온 사람은 투표권을 제한함.


상대적으로 흑인이 불리한데 실질적으로 흑인의 투표권이 박탈될수 있도록 하는 제도.


3. 선거인 명부 삭제.



주지사 전에 조지아주의 선거 관리를 했던 켐프.

선거인 명부 삭제를 어떻게 했나. 선거인 명부의 이름과 주 문서의 이름이 일치하지 않으면 다 지움.

결혼해서 이름이 바뀐다든가 흑인들 성이나 이름이 어렵잖아요.


스펠링을 틀려도 지움.



선거인 명부에서 삭제한 유권자의 숫자가 백만명이상임.


사람들이 봤을땐 정황상 쉬운 이름으 ㅣ백인들에 비해 흑인들에게 불리한 법이라고 생각.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없는 흑인들은 결국 투표권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임.


일부 주 차원의 선거법을 보면 사회적으로 소수에 속하는 사람들의 투표권을




옛날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돌아온 느낌임.



경찰 내에서도 잘못을 시인.


함께 무릎을 끓으며 고인의 죽음 추모.


과거와는 달리 이례적인 모습. 흑백을 떠나 함께 차별에 맞서는 사람들.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미국.


2020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투표 독여 운동을 하는 흑인 유명인들.



더이상 흑인의 투표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감시에 필요한 비용을 기부하겠다고 밝힌 르브론 제임스.


또다른 변화들.




우드로 윌슨 이름이 담긴 기관들이 있어요.


프린스턴대 내 우드로 윌슨 공공 국제 스쿨.



우드로 윌슨 기숙형 대학은 퍼스트 칼리지로 변경.

상당히 의미 있는 변화.


흑백 차별이 심했던 미시시피주.




인종 차별의 상징은 남부연합 문양을 지금까지도 사용중.


주기교체는 11월 주민 투표를 통해 최종 확정될 예정임.





진정한 인종 평등을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노력.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시작으로 미국의 건국부터 지금까지


미국의 정치제도가 흑인을 어떻게 다루었는가를 살펴본 시간.


하나의 국가가 있고 시민이 정의가 되면 국가는 시민을 동등하게 대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러나 미국의 역사는  과거의 흑인 노예. 그리고 지금의 흑인들을 2등시민 취급을 제도적으로 해 왔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를 되돌아보면



이민자들이 늘어난다면 집단 간의 차별과 편견이 생겨날수도.


적어도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는  1등 시민과 2등시민을 구별하는  차별적인 내용이 담겨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안에 차별이 존재하진 않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 시간.


<출처: jtbc  차이나는 클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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