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동아시아의 외교 현장을 들여다볼 수 있는 양직공도. 한반도 사신들은 어떤 활약을 했을까?
양나라에 실제로 방문한 백제 사신.
521년 백제 사신의 발언을 양나라 사관이 적은 기록이 있습니다.
이 나라들은 우리 백제에 복속해 있는 나라다.
사라가 바로 신라죠. 3세기때 한반도 지도를 보면 신라의 전신인 사로국, 사라라고 되어있죠. 백제 사신의 발언에서 이상한 점이 있죠. 삼국사기를 통해 보더라도 신라는 엄연한 독립국이죠. 대체 왜 이런 발언이 나왔을까?
다른 기록을 보면 양직공도 신라제기는 신라 사신이 전달한 내용을 양나라 사관이 적은 거예요.
신라에서 나온 금석문을 보면 문자가 없다는 건 거짓말이죠.
500년대 초반 신라의 정치, 경제 상황을 문지로 기록한 비석이죠.
신라 사신은 왜 불리한 발언을 했을까? 당시 백제와 신라의 외교 상황을 비교해보면 백제의 외교는 4세기부터 중국 왕조와 직접 교류를 했죠. 서해 항로를 통해 활발한 교류를 했죠. 신라는 중국과의 외교가 지정학적으로 불리하죠. 그런데 신라도 나라가 점점 성장하다 보니까 중구과의 단독 외교가 시급한 거예요. 중국과의 교역으로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고 중국 황제가 책봉호를 내릴 경우 국제무대에서 위신을 세울 수 있는 기회인 거죠. 자기 PR을 확실히 해야 하는 상황이죠.
신라가 중국과 외교를 하기 위해서는 고구려에 대항하고자 나제동맹을 맺고 있었던 시기예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신라의 외교 데뷔전, 백제사신과 양나라에 도착합니다. 갑자기 달라지는 백제 사신의 태도. 백제 사신 뒤를 따라 내린 초행자, 백제사신은 급이 있으니까 5성급 호텔의 좋은 방을 숙소로 반면에 신라는 듣도 보도 못한 나라죠. 방에 넣어주긴 했는데 급이 굉장히 낮은 기숙사 수준의 숙소.
신라 측의 놀라운 사실, 중국어를 못함. 신라에는 중국어 회화가 가능한 사람이 없고 필담은 가능했다고 해요.
연회석에도 상석에 앉은 백제 사신은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져있고 반면 신라 사신은 별석에 자리했죠.
당시 신라의 왕인 법흥왕의 업적과 신라의 정세를 소개, 그런데 중국어를 모르잖아요. 백제가 통역을 해준 거죠.
백제 사신이 전달한 내용은 나라 이름은 사라, 백제에 종속해 있는 속국이라고 함, 백제의 외교 스킬이 의미하는 것은 조공 피싱의 달인 부상국의 혜심과 비교했을 때, 백제 사신의 수준이 월등하죠.
말도 안 되는 판타지를 지어냈던 혜심, 백제 사신의 거짓말은 개연성이 있다. 일어날 법한 일을 이야기하면서 백제의 국력을 과시하는데 완벽하게 이용했죠.
신라를 견제했다기보다는 요잉 한 것. 475년 장수왕의 공격으로 백제의 한성이 함락되고 그 과정에서 개로왕이 목숨을 잃음. 이후 웅진으로 천도를 했죠. 국내 정세가 몹시 불안한 상황이었다고 해요. 이런 상황이 당시 중국에 알려졌고, 40여 년 이후에 재위 501~523 무령왕이 집권하면서 나라가 안전되었죠. 백제의 야심은 국력을 되찾은 상황을 중국에 알리고 위상을 다시 세우자! 양나라에 사신을 파견, 그때 훅 들어온 신라의 SOS
백제의 외교는 완벽하게 성공하죠. 당시 백제는 영동대 장군 책봉을 받음, 2품 관직에 해당돼요. 고구려는 영동 장군으로 당시 고구려보다 높은 책봉호를 받았어요.
백제는 그야말로 자기 몸을 부풀려서 자국의 위상을 고구려만큼 높이는 데 성공했죠. 그에 반해 신라는 외교 실패, 책봉 호도받지 못하고 정식 국가로서, 독립국가로서 인정을 못 받은 거죠.
외교 참사 이후 절치부심해서 551년 백제와 신라가 손을 잡고 고구려를 공격해서 한강 유역을 되찾죠. 백제는 한강 하류 6군 회복, 신라는 한강 상류 10군을 차지. 그리고 신라의 반격 553년 한강 유역을 완전히 차지하죠. 중국으로 가는 서해 항로를 확보했죠. 그래서 중국과 독자적인 외교에 성공하게 됩니다.
중국어도 배우고 중국문화를 수입하면서 독립적 외교를 구축합니다. 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게 됩니다. 서해항로를 통해 대당 외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군사동맹을 이뤄냅니다.
그리고 나당 연합으로 백제, 고구려가 차례대로 멸망하고 이후 나당전쟁에서도 승리를 하죠.
676년 김춘추에 의해 통일신라의 역사를 쓰게 됩니다.
지금의 남북한 관계와 비슷해요. 한민족이라 하더라도 정치적, 이념적으로 대립하면 비극이 발생하기 마련이죠. 고대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언어와 문화가 비슷하고 공유하는 부분도 많았지만 한반도 패권을 다투는 상황에서 삼국 간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죠.
백제의 사기극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백제의 요서 진출설. 요서는 중국 요하의 서쪽 지역 북위에 해당하죠.
중국 역사서에 기록된 백제 요서 진출,
동아시아 최대 강국 북위와 싸워서 이겼다는 내용이죠.
국서 명칭에 주목해야 해요. 송서, 송나라 남조에 해당하죠. 요서에는 북위예요. 백제와 북위 전투기록이 사실이라면 북위의 역사서에도 있어야 하는 내용인데 백제의 요서 진출 기록은 남조 역사서에만 존재하죠.
북위를 견제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될만한 나라가 필요하죠. 고구려는 북위와 가까운 주변국이죠. 남조가 고구려는 더 우대한다면?!
고구려대 백제인데 남조에게 어디를 택할 거냐고 아마 백제의 어필에 솔깃했을 거라고 해요.
남조를 쥐락펴락한 듯한 외교 스킬, 백제의 요서 진출설은 현재도 논란 중이라 그대로 믿어도 된다는 연구자도 있고, 남조의 사관들이 백제의 과장을 그대로 믿은 결과일 수도 있어 다양한 가능성들을 면밀하게 검토하는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책마다 달라 최근 일부 교과선들이 개정되었는데
교과서끼리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고 해요. 역사기록으로 살펴본 고대 동아시아 국제관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속고 속이는 치열하고도 기막힌 외교 전략.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고대의 외교전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한문 해석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대 외교와 비교해 본다면?
과거에 했던 김정은의 발언이 먼 미래에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미국과 양자 대결을 벌였던 상황으로 볼 수는 없죠. 국제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전략이에요. 그리고 또 한 가지 고대의 외교전략은 현대 외교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에 착한 외교는 없습니다. 역사를 통해 외교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출처: jtbc 차이 나는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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