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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이야기

차이나는 클라스, 민은기교수, 누구나 알지만, 그러나 잘 모르는 베토벤.

by 속좁은펭귄 2019.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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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음악가!!



250년동안 잊히지 않은 불멸의 이름, 베토벤. 이름과 함께 여전히 사랑받는 그의 작품들.


베토벤의 대표곡. 빠바바밤 빠바바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네개의 음이죠. 운명 교향곡.


베토벤, 얼마나 알고있나.



너무나 익숙한 멜로디죠.



베토벤의 가곡 Ich ilebe dich 그대를 사랑해. 


고등학교 음악 교과서에도 실린 곡이에요.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 운명 교향곡 2주제.


1주제는 모두 아는 빠바바밤. 반면 처음 들어본 듯한 2주제.

교향곡의 특징이 상반되는 2개의 주제가 등장하죠.


특징2. 주제를 끊임없이 변주, 엮어내는 형식임.


2주제 등장 시점이 곡시작 1분후에요. 이말인 즉슨.. 우리가 클래식은 늘 1분 미리듣기로만 해서 그렇죵.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잘 모르는 베토벤 . 강연이 끝나면 누구나 알게되는 베토벤.



음악에 개성을 담으려고 노력했던 최초의 뮤지션..




강렬한 눈빛에 앙다문 입술이 인상적이죠. 사진기 발명 전이라 베토벤 실제 모습은 확인 불가해요.


강렬한 이미지= 화가의 생각이 반영된거에요.


실제모습보다 조금 미화되어 있음. 1820년 50세 무렵 그려진 초상화이고 1823년 3년차이로 그려진 또다른 초상화가 있어요.



보다 사실적으로 그려진 50대 베토벤의 모습.

특히 옷차림에 관심이 없던 베토벤 그만큼 외모에 무신경했다고 전해짐.


베토벤을 왜 미화했을까? 위대한 음악가인 베토벤에 대한 존경심이 반영 된 것.


오늘날까지 이상적인 예술가의 전형으로 각인되어 있죠.



청중의 감상태도에요.



베토벤 이전에는 춤을 추거나 수다를 떨며 음악감상을 하며 음악회를 사교의 장으로 활용.



그림속 연주자는 10살 무렵의 모차르트임.


176년 모차르트 나이 열살, 콩티 공작 살롱 연주회 풍경.



유년시절부터 유럽 전역을 돌며 순회 연주회를 개최함.

주로 상류층의 살롱에서 음악회를 개최.




심각한 표정의 청중이 인상적이죠. 확 바뀐 청중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임.



원숙기 베토벤의 독창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걸작임.

이전과 달리 진지하고 복잡했던 베토벤의 작품.


분석하려면 음악에 자동 집중하게 되죠. 오직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려 발걸음을 하게 되었죠.


모차르트 시대는 선 사교모임 후 음악감상인데 베토벤 시대는 음악을 듣기 위해 청중이 모이기 시작함.


청중의 탄생이 베토벤이 이룬 음악계의 가장 큰 변화죠. 베토벤 사후엔 전문 콘서트홀까지 짓기 시작함.


베토벤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대목. 공공음악회의 시초.


당대 최고의 음악 도시 빈에서 명성을 얻은 베토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던 그.


1800년 음악가 최초로 본인이 기획, 이익을 얻는 음악회를 개최. 이후 공공음악회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함.




베토벤 이전엔 훌륭한 음악의 기준은?


의뢰인의 목적에 부합하는 음악이에요. 실력파 작곡가의 기준은 맞춤 작곡 잘하는 작곡가임


결혼식 축제등등 주문받아 음악을 제작함.


고전주의 시대 대표 음악가.



베를린필 음악감독에 견주는 위상. 

1761년 취임 당시 고용계약서를 작성했는데 12시에 대기해서 오늘의 음악을 주문받는다.



모차르트도 한때 궁정 음악가로 활동을 했는데 결국 불만을 품고 사임함


프리선언 이전 모차르트도 의뢰받아 작곡을 함.




의뢰인 맞춤 음악이기에 베토벤 이전에는 작곡가의 생각이나 감정은 배제를 했죠.

듣기 좋은 아름다운 선율에 집중을 함.


오락에서 예술로~ 음악의 가치를 정립한 선구자.

모든 시대를 통틀어 베토벤이 가장 위대한 이유임.




자유와 평등, 특권 계급층을 무너뜨리고 사고방식에도 혁신을 이룬 프랑스 혁명.

혁명의 물살은 음악계의 구조에도 큰 변화를 일으켰죠.


가볍고 유쾌한 음악은 구시대적 음악으로 치부. 이때 혁명의 물살을 타고 등장한 베토벤.

사람들은 진지하고 철학적인 음악에 열광을 했는데 시대가 낳은 음악가로 급부상하게됐죠.


베토벤은 작품에 대한 태도가 이전 작곡가와 달랐는데.. 음악을 작품으로 생각한 최초의 예술가에요.


주문 제작 곡은 한번 연주하면 끝이기에 다른 작곡가들은 작품으로 생각하지 않앗죠.



그래서 한 행동?


작품번호 매기기.

생전 작품 번호를 매기지 않은 모차르트, 하이든.

사후 음악학자들이 작품을 연도순으로 정리하느라..힘들었다죠.


연도순으로 작품번호를 부여. 모차르트, 하이든은 작품번호에는 특정 기호가 붙음.



쾨헬번호 1번= KV.1


하이든을 정리한 음악학자는 호보켄.


호보켄 번호 1번 = Hob.1


반면 직접 작품번호를 붙인 베토벤.



작품번호 1번= Op.1


영원히 남을 첫번째 작품!



실제 지저분하기로 유명했던 베토벤의 악보.


악보를 옮겨 적는 필사가들이 존재했는데 해독이 어렵기로 유명했다고해요.


완벽주의적인 성격으로 유명햇는데 보통의 작곡가들은 새로운 악상이 떠오르면 새 작품을 작곡햇는데

베토벤은 끝까지 수정을 함.



" 내 작품은 지금의 청중을 위한 것이 아니다"

" 후대에 들어줄 청중을 위해 작곡하는 것이다."


매 작품 많은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베토벤.



비발디는 콘체르토(협주곡) 500여곡임


베토벤의 작품관을 따른 후배들. 20세기 작곡가 이고리 스트라빈스키는


" 비발디는 혐주곡 한곡을 썼고 그 곡을 500번 편곡했다"


베토벤 이후로는 작품의 개수가 줄고 작품마다 특색이 없으면 발표하지 않는 문화가 형성됨.


한국이 낳은거장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한인간이 그렇게 표현하는건 미켈란젤로, 셰익스피어 몇 사람만의 특권인거 같다고

베토벤이 그런 작곡가라고.


국제 피아노 콩쿠르 역사상 최연소 우승자 피아니스트 김선욱.


그의 장기이자 음악 인생에서 가장큰 비중을 차지해온 베토벤.



또 힘들때나 즐거울때나 많은 위로와 기쁨을 주는 음악이라고함.


위대한 음악가 이전 인간 베토벤의 삶.



불행했던 어린시절.

심각한 알코올중독자로 생활력이 없던 아버지에..아버지의 학대까지 있었음.


베토벤을 음악 신동으로 만들기 위해 아버지가 매일같이 폭력을 써서 다그침


피아노가 싫을법한데 그래도 피아노가 좋다고함.


베토벤 4살 무렵 이미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18살 모차르트. 모차르트는 아버지가 만든 거잖아요.

모차르트처럼 신동으로 키워야지



심지어 나이를 속이기까지함. 어릴때부터 즉흥연주에 재능을 보인 베토벤. 하지만 악보대로 치길 강요한 아버지.



어머니도 심각한 우울증이 있었고 베토벤 17살 무렵 어머니가 사망함.

아버지 대신 두 동생을 부양하게 됨. 어린나이에 감당하기 벅찼을 환경





베토벤 20살 무렵 본을 방문한 세계적 작곡가 하이든.


장송칸타타를 높이 평가해 제자로 삼음. 마침내 본에서 탈출해 음악의 도시 빈으로 진출.


아버지의 학대로 다져진 피아노 실력. 신생 악기 피아노가 인기를 끌던 시기로



피아노 이전의 악기는 하프시코드로



피아노의시대, 연주의 범주도 확장됨.

하지만 빈에서는 여전히 하프시코드 스타일이 유행했음. 이시기 혜성같이 등장한 신예, 베토벤.

피아노가 견뎌내기 힘들정도 쎄게 침



격렬한 연주 스타일로 등장과 동시에 주목받은 신예 베토벤.



사람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죠. 빈에서 활동한 피아니스트 전성시대~


쟁쟁한 라이벌을 제치고 제왕으로 우뚝섬. 

귀족 초정으로 성사된 피아노 배틀.



남아있는 베토벤의 배틀 기록은 3개에요.




베토벤의 유명한 제자인 카를 체르니.




피아노 줄이 끊어지기 일쑤고 당시는 하루가 다르게 피아노 성능이 개량되던 때라 좀더 튼튼하게, 음색을 다양하게 주문을 한 베토벤.


본의아니게 피아노 발전에도 크게 기여를 햇죠.



작곡가로 유명해진 시기는?? 피아니스트 활동 시기 피아노에 대한 애정을 작곡에 녹여내기 시작함.


청년부터 말년까지 평생 쉬지 않고 피아노곡을 작곡함.






18C말부터 19C초 피아노가 대중 악기로 자리 잡으면서 덩달아 유행하던 음악 양식으로

피아노 소나타에 예술혼을 집약시킴.


평생에 걸쳐 32개의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함.




소나타는 피아니스트들에게 도전과도 같은 곡이에요.


피아노로 표현할수 있는 최대치의 역량을 집대성함.


국내에서는 피아니스트 이경숙, 백건우, 김선욱 등 총 6명만이 베토벤 소나타 전곡 완주에 성공함.



피아노 소나타 특징을 정리하면 반복되는 요소가 있어요.

음악을 통해서 하고싶은 이야기, 주제.


짧은 선율.

주제란? 음악을 듣고 난뒤 오래 남는 것. 반복되는 선율.


주제를 통해 하고싶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여러번 집요하게 조금씩 다르게


피아노 소나타의 특징.

1. 주제를 끊임없이 변주하며 반복.

2. 드라마틱한 서사 구조.


지나치게 작거나 지나치게 크거나. 감정의 기복이 아주 심한 거죠.


극적인 대비를 통해 드라마틱한 연출을 함.

3. 점진적 효과를 통해 이목을 집중시킴.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베토벤 초기 피아노 소나타의 정점을 이루는 걸작임.

어둡고 비극적인 느낌이죠.


당시 피아노 소나타는 밝고 경쾌한 분위기 였는데 반면 비창은 어둡고 비극적으로 시작함.


왼손에서 분위기를 잡으면 오른손은 빠르게 상승함.


트레몰로란?? 연주에서 음이나 화음을 빨리 규칙적으로 떨리듯이 되풀이하는 연주법이에요.

질주본능. 강렬하면서도 긴박하게 휘몰아치는 연주.


당시에는 큰 충격이었어요.




기분좋음. 모차르트의 유명한 피아노 소나타.

당시 소나타는 피아노 연습용이었어요. 제자들 연습용으로 작곡함.


반면 베토벤 소나타는 연습 불가죠.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는 본인의 감정 전달에 집중함.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라고 해서 무조건 비극적이고 무겁고 격정적인게 아니라..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소나타도 작곡함.




피아노 선율로 완성되는 한편의 시.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베토벤의 재발견.


프랑스 대혁명 이후 진중한 음악을 찾기 시작한 대중들. 그런 요구에 부합한 베토벤의 음악.


서정적인 월광 소나타도 파격적임. 여러개의 악장으로 이뤄진 소나타.


악장= movement.




관습처럼 굳어진 알레그로 악장인 소나타 형식.


월광소나타 1악장은 소나타 형식이 아니에요. 월광소나타 1악장은 즉흥곡처럼 자유로운 환상곡 풍.

대신 소나타 형식을 1악장이 아닌 3악장에 배치함.


격렬의 끝판왕임.



끝없이 휘몰아치는 연주. 도저히 가늠할수 없는 전개.


당당하고 도도하고 일반적으로 피아노 소나타 1악장에 배치하는데 평범함은 거부한 베토벤.


비창, 월광 곡과 제목이 찰떡궁합이라고


제목을 직접 붙인 작품은 단 2개에요. 비창 소나타, 고별 소나타.


나머지 제목은 출판없자가 고른거임 소나타 23번은 단순한 번호보단 열정 같은 극적인 제목이 흥미를 유발하죠.



청력을 잃어갈 무렵 처음엔 본인 증세를 몰랐던 베토벤.


피곤하다. 이명이 들린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 생각함.


청력 상실을 확신한 때는 28살 무렵이에요. 비창 소나타를 작곡한 시기. 귀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함.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을 지..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


음악가에게 청력 상실은 크나큰 충격이죠. 빈에서 음악가로서 주목받기 시작할 무렵

음악계에서 외면받을 것이란 두려움.

병을 숨기기 위해 스스로 고립을 자처했던 베토벤.


명의를 찾아다녔는데 처방약이 아몬드 기름이거나 온천욕이었음.


기대를 했다가 실망하기 일쑤였고 베토벤에게 찾아온 인생 최대의 위기.

이시기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작성합니다.


동생들에게 본인이 죽은후 처리할 일들을 당부함.



죽음에 대한 결심이 약해진 후 유서 형식을 빌려 독백처럼 남긴 글. 사후 서랍에서 발견됌.


이때부터 베토벤의 음악 양식이 크게 변화합니다.


그 첫번째 작품이 템페스트.



급작스럽게 선율이 빨라지고 심오함이 느껴지는 작품임.


아주 느렸다가 빨라졌다가 더 느려졌다가 10마디동안 5번의 템포 변화.

격하게 몰아치는 것이 특징임.



전성기로 도약하게 만든 곡? 청력 상실 극복은 평생 안됐겟지만..

지금까지의 작곡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다짐의 곡임. 이후 절정기로 도약합니다.


한때 죽으려고까지 했지만 다시 예술가의 길을 걷기로 한 베토벤.


그결심은 베토벤을 절정기로 이끌었고




절정기의 대표곡이 열정소나타에요.


베토벤 생전에 완주한 피아니스트가 없었을 정도임. 심지어 듀엣용 편곡 본까지 출판함.

그만큼 어려운 곡임.


당시 피아노의 약한 액션 장치로는 연주가 불가했음. 그러다가 19세기 실력파 피아니스트의 등장.




시대를 앞서간 곡을 작곡한 셈이죠.



베토벤 음악 중 가장 격렬하고 투쟁적인 작품임.


피아니스트들에겐 도전과도 같은 곡, 열정.



베토벤의 연애사는??


호감형은 아니었음. 당대 최고의 음악가라 관심을 보인 여성들도 존재했지만

그런여성은 베토벤이 또 거부함. 이룰수 없는 사랑에만 도전을 함.


유부녀, 신분차이, 나이차이 .. 그래서 평생 독신이었음


사후에 뜨거운 연애사가 밝혀졌는데 서랍속에서 발견된 3통의 편지.


수취인 불명




엘리제를 위하여는 사랑하는 연인을 위한 세레나데죠


한 여성에게 헌정한 엘리제를 위하여



엘리제를 위하여는 사실은.. 악필탓으로 테레제를 엘리제로 오독한거에요.


줄리에타 귀차르디에게 헌정한 월광 소나타.




최근 유력한 세번째 후보가 등장함.



베토벤이 친구에서 연인으로 넘어갈수 없었던게 엄격했던 도덕관으로 결국 사랑을 포기한거라고


이별후 찾아온 침체기. 무려 10년동안 지속됨.


베토벤의 침체기는 시대적 분위기도 한몫했죠. 더이상 베토벤의 음악이 먹히지 않게 됐음.


시대를 바꾼 결정적 사건은 나폴레옹의 참패에요.



유럽은 다시 평화와 향락의 시대로 복귀.


대중들은 로시니의 오페라, 슈베르트 가곡에 열광함. 부담없이 들을수 있는 음악을 선호함.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했던 베토벤.


변화에 편승한 음악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찾아 떠난 베토벤.

마침내 10년의 침묵을 깨고 새로은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전혀 새로운 작품을 발표함. 말년의 양식. 가장 유명한 곡.


베토벤 마지막 교향굑 교향곡 9번.



교향곡에 최초로 성악을 도입해 음악적 이상을 구현한 작품이죠.




음악도 청중의 반응도 듣지 못했던 그.

공연후 청중석을 향해 베토벤을 돌려세워준 단원.



인류의 역사에 길이 남을 감동적인 장면.

그야말로 대성공이고 가히 폭발적이었음.


10년만에 탄생한 작품에 기대감 증폭. 역시베토벤!! 세상에 없던 새로운 음악을 완성함.


교향곡은 오케스트라가 만들던 것으로 교향곡 최초 합창을 접목함.


사람의 목소리도 악기처럼 연주시간만해도 1시간 11분임.




20살 무렵 환희의 송가를 읽고 감동한 베토벤.

이후 음악으로 작곡할 것을 결심함. 결국 34년만에 이룬꿈. 마지막 교향곡 9번.


우리모두 형제가 되자, 성소로 돌아가자. 인류에게 건네는 평화메시지.



독일인들이여 하나되자.

1936년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 스포츠 행사 무려 6천여명이 환희의 송가를 합창함.


심지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빈번히 연주됨. 독일 군인들은 가스실을 정비하면서 흥얼거린..


아이러니한 건 유대인들의 반응임.



구원의 메시지로 받아들인 유대인들. 가스실로 끌려가면서도 읊조린..


합창 교향곡 1824년 초연후 베토벤의 건강이 악화됨.


" 영면에 든 베토벤"



무려 2만여 명의 빈 시민들이 악성의 죽음을 애도함.


그의 제자 슈베르트, 체르니 외에도 수많은 동료가 마지막 길을 배웅함.


스스로 고립을 자처한 베토벤, 마지막 길은 외롭지 않았길..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던 그의 삶. 일생을 병마와 싸운 류머티즘, 복통, 안구 통증 등 평생 병에 시달린 베토벤.


살아내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을 삶.

본인은 고통과 늘 맞섰지만  인류에겐 큰 위로를 남긴 베토벤.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줘서 감사한 마음.  


죽음이 안타깝지만 한편으론 다행스러운

  다가올 연말 어김없이 울려 퍼지는 노래. 합창 교향곡.


연말만큼은 베토벤 합창교향곡과 함께! 한해동안 불화한 자신과 타인, 모두 화해하고 평화롭게 한해를 마무리하길..



<출처:  jtbc  차이나는클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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